그 때 회사의 운명이 다 되어감을 느낄 수 있었다.!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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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침내 외환은행 출신의 관리인이 모습을 나타냈습니다.
저희들은 영문도 모르는 채 회의실에 도열해 있었습니다.
근엄한 모습의 관리인이 들어서자 관리전무님(관리과장도 있는데 왜 나이 많은 전무님이
사회를 자청하셨는지 의문?)의 사회로 훈시가 시작되고
부사장님(대표이사님의 직책)은 어떻게 하든 관리인의 환심을 사려고
억지 우슴과 몸들 바를 모르는 표정이었습니다. 마치 관리인의 입에서 엄청난 비전이라도
나오길 간절히 바라는 그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.
제가 1996년 4월 독일 출장 후 무염산보고(#매트리스47,48.2021.3.7.3.8), 1997년
12월 8일 국내2위의 스프링 전문공장부도 후 인수보고(#매트리스53.2021.3.14), 1998
년 에 저한테 그 공장의 인수가능여부(#매트리스60.2021.3.21참조)를 뒤늦게 확인
하신 분이 바로 지금 외환 은행 출신 관리인 앞에서 허둥지둥 하시는 바로 그 부사장님이신
겁니다.
부사장님은 지금 절박한 심정으로 그 관리인에게 예의를 갖추고 계시지 만 그게 무슨
소용이 있겠습니까!
오히려 부도 난 회사의 대표로서 죄 없이 도열 해서 마치 교장선생님 훈시를 듣고 있는
것 같은 직원들의 자존감만 떨어뜨리고 있는 것 입니다.
얼마나 많고도 좋은 기회가 있었습니까?
그 골든 타임을 다 놓치고 지금 에서야 자리보존을 위해 몸소 자세를 낮추시는 그 모습에서
전 회사의 운명이 다 되어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.
은행관리인이 무슨 말을 하였는지는 기억도 안 납니다.
단지 마치 전쟁에서 이긴 적장 같은 태도와 그 인상 만이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입니다.
부사장님! 좀 잘하셨어야지요.
이 얼마나 비참 한 일 입니까?
그 순간 의 안일 한 선택이 대한민국의 침대선진화를 못 이룬 슬픈 운명
이었습니다!
제 눈에는 부사장님의 거취가 보였습니다.
그리고 얼마 후 인사발령이 있을 거라는 소문이 사내에 퍼졌습니다.
그 해(1998년) 11월 하순 (IMF 발생1년 후) 저는 공장(경남 함안)회의에 참석합니다.
제 옆에는 관리전무님이 있었고 우리는 그렇게 말없이 공장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.
이어집니다.
#잠웨이 임영일 010 5340 0124
#본 기사 내용은 임영일씨의 기고를 올린 것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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